2010년 6월 2일 수요일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밤의 빛깔 - Bell Orchestre

어제는 정말 황홀한 밤이었습니다. 공기는 맑고 바람도 부드럽게 열린 창 틈으로 불어오는데다 비록 제가 서 있던 창가에서는 달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꽉찬 빛이 손으로 잡힐 듯 느껴지는 그런 어둠이더군요. 기분 좋은 어둠, 언제까지나 이 컴컴한 속을 끝도 없이 걷고 싶어지는, 불현듯 뛰쳐나가고 싶은, 나만의 '밤의 피크닉'을 완성해보고 싶은 그런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친 사람마냥 밤거리를 마구 헤매일 수는 없기에, 저는 새벽까지 방에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으며 마음속의 '밤의 피크닉'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저 쾌적한 어둠 속을 유랑하고 다니는 동안, 귀에서 들려오는 것은 Bell Orchestre의 음악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그 차가운 촉감을 느끼며 밤의 빛깔을 바라보다가, 문득 밤은 검은색만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낮의 햇빛에 환하게 드러나던 그 빛깔들은 검정과 섞여 좀 더 다채로운 빛을 냅니다. 마치, CMYK의 색상 체계에서 Cyan 10% K-black 90%의 검정색이 좀더 풍부한 빛깔을 내듯이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 Bell Orchestre의 음악은 그런 느낌입니다.

Bell Orchestre의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밴드 Arcade Fire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네요. 아시다시피, Arcade Fire는 대단히 유명한 밴드이죠. 장르는 어차피 무의미하다라고 생각하지만, 비슷한 계열의 음악을 찾아보려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그런 것들, Folk, Post Rock, Experimental Instrumetal에도 속하며, 요새 여기저기서 솔깃하게 들려오는, 예전에는 단순히 클래식의 변종 정도로만 생각되었던 Chamber Pop으로도 분류되고(유명한 뮤지션으로 또한 Owen Pallett a.k.a Final Fantasy가 있는) 또 Camel과 같은 전설적인 밴드가 속했던 Art Rock으로까지 구분이 되는 밴드입니다. 속한 장르도 여러가지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멤버도 또 방대하네요. 일단 정규 멤버는 7명입니다. 바이올린, 아코디온과 같은 전통 악기들과 더불어 기타, 신디사이저같은 전자음을 내는 악기들도 쓰고 있고요... 아무튼, 독특한 밴드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네요.

2003년에 조직되었으니까, 벌써 7년째 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밴드력을 자랑합니다만, 현재의 인기는 거의 세계적이랄까? 인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캐나다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잡았습니다(여기서의 인기는 단순히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인기'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이들의 음악을 단순히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왠지 이런 화창한 날씨를 연상시키는, 파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 낮의 반짝이는 모든 아름다움들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가사의 심각성같은 것을 전혀 따지지 않으면 말이죠.^^;;



Rebellion (Lies) 같은 곡이 딱 그러네요. 일단 제목은 심각하게 '반항' 이런 종류를 떡하니 달고, 나 제법 심각한 음악이야, 라고 말하며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우리를 쳐다봅니다만, 막상 시작된 음악은 너무나 발랄해서 이런 화창한 날씨에 공원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줄 그런 멜로디입니다.



비교적 심각한 My Body is a Cage 같은 곡도, 그냥 화창한 하늘 아래 구름이 살짝 끼는 정도라고 할까? 비는 다행히 뿌리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 오솔길을 계속 산책하기에도 그다지 무리가 없어보이네요... 아무튼 이 Arcade Fire는 그들만의 살짝 우울하다가도 밝은 노래들로 꽤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에 그들의 앨범 Funeral이 그래미어워즈 후보까지 오르고, 게다가 Pitchfork에서 2000년대의 가장 중요한 앨범 200선에도 들었으니까요.
(사실,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다른 뮤지션을 소개할때도 자주 나오기는 하겠습니다만, 저로서는 Grammy가 왜 이렇게 중요한 척도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뭐 그래도 일단 Grammy 자체가 유명하니까요, 계속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이런 Arcade Fire에서 투어가 없을때면 멤버들은 모두 각자의 활동을 하곤 하는가 보네요. 이들의 프로젝트 밴드가 꽤 많은걸 보면 말입니다... Beirut도, Stars도,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Bell Orchestre의 두 구성원이자, Arcade Fire의 Formal Member이기도 한, Violinist인 Sarah Neufeld와 Bassist인 Richard Parry는 투어가 없을때 활동을 개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성이 결코 떨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참고로 역시 걸출한 멤버(비록 그가 정규라기보다는 투어때 활동하는 구성원에 가까웠다고 하더라도) 중 하나였던 '캐나다의 왕자님' Owen Pallett의 경우에는 아예 솔로로 독립했습니다. 한때 Final Fantasy라는 원맨밴드로, 그리고 지금은 원래의 자신의 이름인 Owen Pallett으로 돌아온 것이죠.

Bell Orchestre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Arcade Fire의 투어가 잠시 없던, 2005년의 휴지기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보컬은 없는 순수한 연주음악 형태로 그들의 첫 앨범 Recording a Tape the Colour of the Light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Arcade Fire와 같은 스튜디오에서 녹음까지 마쳤구요. 처음에는 그때 막 떠올라 승승장구하던 Arcade Fire의 인기라는 후광 때문에 아마도 다들 '뭐 뻔하잖아? Arcade Fire와 같은 음악을 하겠지.' 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밴드는 이후 유럽 곳곳에서 투어를 하는 등, 의외의 인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그건 Arcade Fire의 후광 탓은 절대 아니었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밤의 놀이공원, 그곳은 마법의 나라로 가는 입구와도 같지요. 매혹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싹하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 1집 앨범 Recording a Tape the Colour of the Light에 수록된 곡이었던 The Upwards March의 비디오 클립 자체도, 그리고 음악에서도 저는 다프네 뒤 모리에의 '연못'이라는 짧은 소품을 연상했습니다. 위험하지만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갈 수 없는 환상의 나라에 대한, 기회를 놓쳐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지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환멸도 슬쩍 엿보이는 멋진 단편이었습니다...

Bell orchestre의 음악은 이렇습니다. 수록곡 하나하나는 다르지만 모두가 밤을 연상시키는 그런 곡들이었지요. Arcade Fire가 보다 쨍쨍한 햇빛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그들은 그 반대인 밤의 어둠 속에서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밤이 무조건 암울하고 우울하며 공포스럽지는 않습니다. 어둠의 검은 색에도 얼마든지 여러 빛깔이 섞여 화려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음악은 보여줍니다...



저는 예전에 이미 Owen Pallett의 경이로운 라이브 동영상을 통해서 바이올린이 단순히 활과 현이 스치면서 소리를 내는 악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만, 여기 이 곡 Recording a Tape... (Typewriter Duet)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인 Sarah 역시 바이올린의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반에 들리는 소리는 마치 기타를 연주하는 소리와도 비슷하게 들립니다만, 사실은 바이올린의 현 자체를 아예 손가락으로 튕기는 소리입니다. 이렇게도 가능할 수가 있군요 ㅎㅎ 곡의 후반부에 가면 바이올린은 맑은 종소리와 같은 리듬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원래의 날카롭고도 따뜻한 소리를 되찾습니다. 이 곡의 느낌은 왠지 유리창에 알알이 맺히는, 어둠 속의 빗방울이 손에 잡힐 듯 합니다. 차갑고도 따뜻하고, 그리고 한없이 투명에 가깝습니다...

비록 많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1집 발매 이후 어느정도 인지도를 높인 Bell Orchestre는 그동안 다시 Arcade Fire가 활동하면서 숲속의 미녀마냥 잠에 빠져들고 그러다가 Arcade Fire가 다시 활동을 잠시 접자, 누워있던 숲 속의 어둠 속에서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2009년에 발표한 앨범이 As Seen Through Windows 예요. 아예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밤의 어둠 속에 더욱 동화되었다고 할까요?



제가 꼭 한번 외국에 나가서라도 보고 싶은 라이브 중 하나가 이들 Bell Orchestre의 라이브입니다. 현장에서 바로 찍은 동영상에 담긴 음색이 마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소리마냥 깨끗하고 곱기만 하네요. 역시 라이브에 강한 밴드 출신답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무튼, 이들의 새 앨범 As Seen Through Windows는 예전보다 더욱 깊고 소리없이 어둠에 동화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음침한 어둠은 아니고, 끊임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콜릿같은 어둠 속의 작은 길을 주욱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곁에는 풀밭들이 있고, 향기가 낮보다 더 생생해진 꽃들이 줄지어 있고,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옵니다. 어둠 속의 모든 것들이 살아 있지만 약간은 혼자가 외롭다고 생각되는 그런 길, 하지만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 하나 없어도 전혀 무섭지 않은 그런 밤입니다. 산들바람을 맞으면서, 저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보기로 결심합니다. 무엇이 나올까요? 제 도착지는 어디일까요?



전작의 매혹적인 곡, Uptown March를 연상시키는 반가움이 이번 앨범의 수록곡 The Gaze에서도 묻어나옵니다. 마치 길가다가 예전에 보았던 꽃을 다시 발견하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돌멩이라고 해도 상관없겠군요... ㅎㅎ 짧고도 강렬하고 발랄한 음이 잠시 제 발을 까닥거리게 만듭니다. 만약 Arcade Fire의 가장 우울한 곡을 '낮의 우울함'이라고 부른다면, 이 곡은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밤의 쾌활함'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이마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퍼뜩 눈을 떠보면, 밤의 오솔길이 아닌 방의 유리창에 열이 오른 이마를 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허무한 느낌도 잠시, 다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밤의 다채로운 빛깔에 매혹되어 버립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빛들의 행렬, 그리고 그 위의 구름 하나까지도 세세하게 보일 듯한 투명한 밤의 유리창 아래 떠오른 짙은 보라색의 구름들, 별들, 흐리게 번져가는 달빛들... 이런 것들이 바로 이 앨범 As Seen Through Windows의 이미지입니다...

...피크닉을 가기엔 오늘 하루 몹시도 쾌적한 날씨였습니다만, 그렇다고 밤에도 뛰어나갈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럴때 저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어둠을 응시하며 상상속의 '밤의 피크닉'을 떠납니다. 마음 속으로 길을 걸어가던, 아니면 단순히 유리창을 통해 마주보던간에 어둠은 화려한 색색의 빛깔을 펼쳐 저를 상냥하게 감싸줍니다. Bell Orchestre의 음악은 이렇습니다...

사족 1 : 캐나다의 왕자님(웃음)이라는 별명은, 제 지인들이 Owen Pallett을 보고 붙여준 별명입니다. 귀티가 좔좔 흐른다고 캐나다에도 왕족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더군요 ㅎㅎㅎ;;;

사족 2 : 저는 가끔 Pitchfork를 Fitchfork로 오타를 냅니다. 다행히 로그스님이 사전에 봐주셨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망신살이 하늘로 뻗칠뻔 했습니다. 조만간 Pitchfork에서 자기네 이름을 잘못 쓴다고 고소할 것 같습니다... ㄷㄷㄷ(하지만 그정도로 유명해질 수나 있을까요?)

사족 3 : 전문작가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음악을 접하는 사람도 아니다보니 글을 심하게 못씁니다... '잘알지도 못하면서' 라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고, 오타나 뭔가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사정없이 지적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